살며 생각하며/내가 좋아하는 시

1월1일에 -이채경-

FREE AS THE WIND 2017. 1. 3. 10:40

1월 1일에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-이채경-

 

 

아침에 눈을 뜨니

흰 서리 내린 겨울 창문으로

성큼 새해가 와 있습니다.

나는 가슴이 덜컹합니다.

추위를 이기려 차를 끓이면서

이대로 다시 잠이 들면 그만큼

새해가 늦게 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.

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

지난해와 달라진 게 없는데

그냥 새해가 와 버리면 어쩌나요.

나를 슬프게 하던 일들은

여전히 나를 아프게 합니다.

그리운 사람들은 멀리 있고

화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떠나려고 해요.

나는 잠시 지난 시간 속

슬프고 아름다웠던 기억들 안에

머무를 수는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.

그 기억들은 꿈과 눈물과 소망으로 가득 찬 것이며

웃음과 한숨으로 빚어진 것이기에

내게는 마치 마음의 뼈와 같습니다.

하지만 어제의 짐을 지고는

오늘의 삶을 살 수 없듯이

하나가 끝나야 비로소 하나가 시작됩니다.

비록 준비가 없어도 떠나야 할 때는 떠나는 겁니다.

뼈를 다치는 아픔에 정신이 어지러울지라도

끊어야 할 때는 끊는 겁니다.

끊어야 다시 이을 수 있고

떠나야 도착할 수 있고

헤어져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.

내 마음이 끊고 먼 새로운 길을 떠날 때

비로소 내게는 새해가 시작됩니다.

이런... 차가 식었군요.

다시 데워야겠습니다.

이제 슬픔의 속살을 똑바로 보고

끊어지는 현기증 나는 아픔을 견딜 때

벗을 위해 먼길을 조건 없이 떠날 때

나는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.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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