살며 생각하며/내가 좋아하는 시

슬픈날의 편지 / 이해인

FREE AS THE WIND 2010. 9. 13. 08:17

슬픈날의 편지 / 이해인


    모랫벌에 박혀 있는
    하얀 조가비처럼
    내 마음속에 박혀 있는
    정체를 알 수 없는
    어떤 슬픔 하나

    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
    눈물로도 달랠 길 없고
    그대의 따뜻한 말로도
   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

   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
   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
   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
   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
    담담히 받아들이며
    지금은 그저
   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
   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

    슬픔은 오직
   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
   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
   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

    사랑하는 이여
    항상 답답하시겠지만
   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
   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